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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나에게 읽어주다

민수기 22장 나귀에게 책망을 받은 발람 2022년 3월 6일

by 로카리스 LORD Charis 2022.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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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의 발람 이야기는 지금까지 주연이던 이스라엘이 사라지고 새로운 부주인공 모압 왕 발락과 정체가 모호한 발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발락과 발람이 두 사람이 북 치고 장구 치게 하면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발람은 어리석은 길을 가다가 나귀에게 맞습니다. 

시범 조교 역할을 합니다. 

발람의 실패를 통해 지혜의 교훈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신명기 말씀의 언약 갱신이 이뤄지고 모세는 이곳에서 죽습니다. 

이때 모압 왕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많으므로 번민하였고 미디안 장로들에게 토로합니다.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같이 우리도 먹을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모압 땅을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양식도 돈을 주고 사서 먹겠다고 이스라엘은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발락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을 침략해 다 뜯어먹지 않을까 쓸데없는 염려를 합니다. 

그리고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달라고 청합니다. 

발람은 아마도 당시 유명한 복술자였던 것 같습니다. 

발람이 축복하면 축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게 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한 민족 곧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복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축복하신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은 저주를 자청하는 일입니다. 

 

 

모압과 미디안 장로들이 두둑한 복채를 들고 발람을 찾아갔습니다. 

발람은 이런 발락을 말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영접하고 유숙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무당 발람과 말씀을 나누는 것이 의아합니다. 

이것은 많은 성경학자들의 고민 사항일 것입니다. 

민수기만의 특별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발람을 찾아온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실존에 관한 질문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 어디에 있느냐, 너는 누구냐 하는 질문입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냐, 너는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복주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목자와 동역자들을 떠나지 않고 함께하면 언젠가 복을 받습니다. 

목자를 힘들게 해도 목자를 떠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이 은혜받은 사람입니다. 

술친구, 게임 친구와 함께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발람은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발락이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시 다른 사람을 보냅니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냅니다. 

그리고 크게 높이고 발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발락은 발람의 약점을 잡고자 했고, 또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명예와 권세의 유혹으로 달려듭니다. 

복채는 거절했지만 발람은 권세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사탄은 약점을 알고 공격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공격합니다. 

한 번 공격해서 넘어지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합니다. 

세상을 너에게 주겠다, 권력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독재자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탄압합니다. 

권력이 커지면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부립니다.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권력의 도구가 되고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유혹할 때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발람은 은금을 줘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고 해놓고 이 밤에 유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듣겠다고 합니다. 

모순입니다. 

높은 자리의 권력의 유혹에 걸려들었습니다. 

밤에 하나님은 발람에게 함께 가라고 하십니다. 

왜 말을 바꾸십니까?

이미 발람이 그들과 함께 가고자 뜻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가지 말라고 해도 발람이 안 들을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의 뜻과 고집을 억지로 꺽지 않으시고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부모가 되어서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고통스럽지만 결국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요 사랑입니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고관들과 함께 갑니다. 

사실은 그가 가는 것은 하나님의 큰 고통입니다. 

진노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섰는데 나귀가 밭으로 들어갑니다. 

발람이 채찍을 휘두릅니다. 

나귀가 발람의 발을 짓눌러 상하게 했습니다. 

발람이 또 채찍을 휘두릅니다. 

나귀가 나중에는 발람의 발 밑에 엎드렸습니다. 

발람은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습니다. 

나귀는 주인의 죽음의 피하려고 애쓰는데 발람은 그런 나귀를 채찍과 막대기로 때렸습니다.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십니다. 

당신이 왜 나를 때리냐 합니다.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항변했습니다. 

나귀가 말을 하다니 놀랄 일입니다. 

그런데 발람은 놀라지 않고 네가 나를 거역해서 칼이 있었으면 죽였을 거다 합니다. 

나귀가 나는 오늘까지 당신이 일생 동안 탄 나귀인데 지금까지 그런 적이 있냐고 묻습니다. 

주인을 거역한 일이 없는 착하고 순한 나귀를 발람은 무자비하게 때립니다. 

발람은 권력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때리겠다고 하니 그렇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셔서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든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나귀는 죽음의 길을 알았지만 발람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발람은 나귀가 알고 보는 것을 모르고 알지 못했습니다. 

명예와 권력 욕심이 영적인 눈을 멀게 했습니다. 

사람은 나귀보다 복 받은 자입니다. 

사람은 말을 합니다. 

나귀보다 더 지혜롭고 머리가 좋습니다. 

나귀를 때리지 말고 잘 돌보아야 합니다. 

더 많이 받은 은혜를 나귀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보고 듣고 아는 것이 나귀보다 못하고 내 말을 안 듣는다고 나귀를 때리니 나귀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눈을 뜨게 하지 않으시면 탐욕의 길을 가다가 여호와의 사자의 칼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나귀가 그 길을 갔다면 발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발람은 그제야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범죄했음을 고백했고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함께 가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전하라고 하십니다. 

발락은 발람을 크게 환영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말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방인 무당과 대화하는 것도 특이하고 나귀와 사람과 말하는 것도 특이합니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해서 일하십니다. 

이방의 복술자를 쓰기도 하시고 말 못 하는 나귀를 쓰기도 하십니다. 

온 세상 만물을 사용하십니다. 

발람 이야기는 인간의 숨은 욕망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사람이 자기 말로 세상을 움직이고자 하는 권력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은 말씀을 떠나게 하고 죽음의 길을 가게 합니다. 

아마 발람에게 평생 순종하여 섬긴 착한 나귀 때문에 죽음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나귀가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하여 살아난 것입니다. 

발람 이야기는 신약에도 인용됩니다. 

거짓 선생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그를 나귀가 저지했다고 합니다. 

화 있을진저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갔다고 합니다. 

불명예스러운 지도자의 모습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하는 권력 욕망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모든 욕망입니다. 

가정, 교회, 사회에서 내 뜻이 관철되기 원합니다. 

나라 사이의 전쟁도 권력 욕망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조차도 계속 싸웠습니다. 

누가 최고의 권력을 가질 것인가로 말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사는 한 높아지고자 하는 명예욕과 권력욕에서 온전히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구원의 길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낮은 자리에 오셔서 죄인을 섬기시고 십자가에 목숨을 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영광은 높아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 영광에 눈을 뜨면,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할 때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한 사람을 섬기는 길을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고된 일입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일대일 목자는 많은 사람을 섬길 수 없습니다. 

몇 사람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주의 종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을 섬길 것 같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죽음의 길을 가지 않고 십자가의 영광에 눈을 뜨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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