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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나에게 읽어주다

민수기 13장 14장 열두 수령들의 정탐 보고 2022년 1월 23일

by 로카리스 LORD Charis 2022.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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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정탐 보고는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실패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열 사람은 부정적 보고를 합니다. 

이쯤 되면 이스라엘처럼 실패하지 말자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40년 광야 훈련이 죄의 형벌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마침내 2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각 지파의 지휘관 한 사람씩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십니다. 

지파의 책임자들은 민수기 시작점의 지파 지휘관들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을 보내며 네겝 사망에서 땅과 거민에 대한 자세한 정보 수집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땅이 어떤지 그리고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왜 정탐이 필요한가요?

사실 정탐 때문에 오늘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탐을 통해서 그들이 들어갈 땅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실 승리와 축복을 생각하면서 정탐하면 기대와 감사와 믿음의 성장이 이룰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정탐이 불안과 두려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탐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정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세상을 보는 정탐입니다. 일상이 정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안 보고 살면 실패하지 않나요?

믿음이 없으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올라가서 정탐하였습니다. 

헤브론에는 아낙 자손이 있었습니다. 

강한 용사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골짜기에서 포도 열매가 달린 가지를 둘이 막대기에 꿰어 매어 가지고 왔습니다. 

에스골은 포도송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제 정탐에 대한 보고를 합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면서 거봉 포도송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석류와 무화과도 진열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탐스러운 거봉 포도를 보면서 감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나로 시작되는 보고는 분위기를 이상하게 이끕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아낙 자손을 보았고 거주민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산지와 해변 전역과 요단과 평지에 이미 사람이 가득 차있다고 하였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동요하였습니다. 

 

 

이때 갈렙이 일어나서 말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것은 그의 믿음의 도전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해석하고 적용까지 해야 보고가 완성됩니다. 

갈렙은 사실뿐 아니라 믿음의 관점에서 백성들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열 명의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이야기에 믿음의 보고가  막힙니다. 

더 나아가서 정탐한 땅에 대해서 악평합니다. 

아낙 자손의 거민들 앞에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하였습니다.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사방이 트였고 전략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어서 꼼짝없이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부정적 평가와 보고가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사람들이 멸치 같다 빈 땅이 많다 이런 보고를 기대했을까요?

거민이 강하고 사람들이 가득하고 우리는 메뚜기다 이런 보고를 듣다가 밤새 통곡하다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처자와 아이들이 칼에 쓰러져 죽겠다 하였습니다. 

죽는다는 말은 이번 한 번이 아닙니다. 

힘든 일만 생기면 죽겠다 타령했습니다. 

원망 불평의 선을 넘어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죽음과 홍해의 기적과 만나의 기적과 메추라기 기적으로 인도하시는데 모세 말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지금까지 하신 구원과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고 슬프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부정적인 보고가 백성들의 멘탈을 붕괴시켰습니다. 

가나안 거민 앞에 서있는 그들은 우리는 누구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자아를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 할지 두려움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상식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멘탈 붕괴가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회중 앞에 엎드렸습니다. 

백성들의 행위가 위험함을 감지하고 하나님 앞에 절박함을 갖고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갈렙은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메뚜기 같은 그들이 거기서 싸워야 한다면 사실 살벌한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본 것입니다. 

이미 수백 년 전에 하나님이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아무리 메뚜기 같은 백성도 거인도 이길 수 있습니다. 

메뚜기가 하나님의 어깨에 앉으면 하나님께서 다 거인들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천하무적입니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강한 원수도 이길 수 있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두 번 반복합니다. 

두려움에 빠져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밥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맛있겠다 뭘 먹을까 하죠.

 

그들은 거인이지만 보호자가 없고 우리는 메뚜기 같아도 천지의 주재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이 힘센 놈의 것을 빼앗아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고자 하십니다. 

같은 대상을 보는데 사람만 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면 나를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인도하심을 보면 아무리 크고 잘난 사람 앞에서도 나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크게 약속을 크게 보면 관점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크게 보면 문제가 작아지고 하나님을 작게 여기면 문제가 커져서 우리를 압도한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만 보면 문제가 커지고 문제에 압도당하면 낮은 자존감에 고통합니다. 

믿음을 잃고 옛 생활로 돌아갑니다. 평생 메뚜기의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크게 보고 약속을 믿으면 강한 원수 앞에서도 입맛을 다시고 도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문제 앞에 하나님을 크게 보는 믿음과 희망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원수와 싸울 용기는 없으면서 하나님의 지도자를 돌로 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안 믿고 돌아가겠다는 백성들을 보실 때 화가 나시고 괴롭고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못 주시겠습니까?

백성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끊겠다는 언약 파괴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다 전염병으로 멸하시고 모세에게 다른 백성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말립니다. 

여기서 죽이시면 하나님이 뭐가 되겠냐고 합니다. 

자기 백성을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죽였다고 하면 하나님의 체면이 뭐가 되느냐 합니다. 

금송아지 사건 때 하나님을 인자하시고 사하신다고 하였었던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모세가 그 하나님을 거론합니다. 

주의 권능 즉 용서를 해주셔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인자하심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을 사하셔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셨으니 할 수 없이라도 용서하셔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방금 전 다 죽이겠다고 하셔 놓고 모세가 이렇게 말하니 하나님이 당자 마음을 바꾸십니다. 

내 말대로 사하노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진멸하면 하나님이 일구이언이 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목자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보자입니다. 

모세는 나를 생명 책에서 지워달라고 할 정도로 중보자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위로를 받고 기쁘시고 모세 때문에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2세대들만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회군하라고 하십니다. 

광야로 들어가라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 불평으로 인해 훈련받아야 하기 때문에 광야로 들어가게 됩니다. 

40년 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40년이라는 광야 훈련 기간을 정하셨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이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깨닫게 하시는데 40년의 훈련을 받아도 깨닫지 못합니다. 

 

 

한 번 울고불고했다고 40년... 그러나 이것은 절망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상이기도 하지만

그들로 모델로 삼아서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살아야 하는구나를 깨닫게 하신 것이 아닐까요?

갈렙은 85세이지만 40대처럼 싸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광야 훈련 때 배운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서들은 불신으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자녀들은 광야 훈련을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싸움을 싸워 승리합니다. 

 

 

그래서 민수기 15장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희망과 위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의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은 광야 훈련이 없었을 것입니다.

현실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불신과 불순종의 이스라엘 백성과 가깝습니다. 

우리도 중보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광야는 실패의 장소 같지만 은혜와 사랑과 소망이 함께하는 장소입니다. 

실패를 통해 깨어지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죄를 깨닫고 믿음을 배우게 합니다. 

광야가 아니면 어디서 믿음을 배우겠습니까?

하나님은 실패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함께하시고 언약 백성으로 키우시고 자손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실패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이 광야에서 함께하십니다. 

계속 구름과 불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사랑이 용서하셨고 사랑이 떠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훈련을 받고 광야를 통과하면서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훈련받아야 합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이 중보 기도해주시고 그 용서의 사랑으로 덮으셔서 

광야 시간이 믿음을 배우는 은혜의 기회가 됩니다.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고 광야를 통과하면서 우리의 불순물이 깨어지고 녹아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결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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