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보면서 소원을 빌곤 합니다.
여러분들의 새해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믿음의 사람들로, 새해에는 코비드 19가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생각하면 새해라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면 새 일을 행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희망으로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감옥 밖에 있는 디모데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사랑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보통 이름 앞에는 직함이 있습니다.
바울의 직함의 이름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위를 받아 그의 뜻을 세상에 행하는 대리자입니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로 된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기에 싫다고 원하지 않는다고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사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책임자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여러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디도도 있고, 오네시모도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얻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했습니다.
이러한 수고를 통해 복음을 영접하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영적인 자녀를 볼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복음으로 한 사람의 생명이 생명을 얻고 십자가를 따르게 하는 사도의 직분은 생명을 주는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슬픔이 없고 밤낮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하루 3번씩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바울도 감옥에서 찬송했을 때 사도행전에 보면 옥문이 열렸습니다.
바울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양심과 영혼은 기도하며 감사하며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디모데를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디모데 자체가 바울에게 감사제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감사 제목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며 그를 보고 싶어했습니다.
디모데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디모에의 눈물은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 순수한 눈물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파서 흘리는 눈물은 천국의 진주와도 같습니다.
이러한 눈물을 가진 사람은 보석처럼 하나님 앞에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진실한 눈물은 영혼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영혼을 청결하게 합니다.
세상은 눈물을 흘리면 패배자가 된다고 생각하고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괴로우시고 눈물을 흘리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성경에 보면 3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눈물, 예수님의 눈물은 메마른 세상을 적시는 생수의 강입니다. 더러운 세상을 씻어주시는 정결의 눈물입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받은 신앙의 유산입니다.
돈보다 믿음이 더 소중한 유산입니다.
돈을 상속받아 망한 사람이 많으나 믿음을 상속받아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언젠가 자녀들이 부모의 믿음의 가치를 알고 언젠가 따라올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불일듯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디모데는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은사가 뜨겁게 타오르면 그 은사가 발휘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식으면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력함이 느껴지고 마음이 식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삶도 두렵고 피곤하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두려움은 원수가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무력하게 하고 마비시켜서 쓸모없는 자가 되게 하려고 사탄이 심는 마음이 두려움입니다.
마귀가 나를 무력화시켜서 망가뜨리고 비참하게 만드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 사랑, 절제의 영을 주십니다.
능력은 믿음이 통로가 되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죄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절제는 감정을 통제하고 욕심을 제어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홍해를 열고 길을 내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참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실 때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언약을 맺을 때 시내산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활활 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불이 꺼지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불씨가 있으면 불이 옮겨붙습니다.
디모데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받습니다.
능치 못한 믿음을 갖게 되고 사랑할 힘을 얻게 되고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불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이 불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는 주님을 부끄러워하고 주님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돈과 세상과 권력과 성공을 좇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고난 받는 예수님을 따르면 부끄럽다 생각합니다.
고난을 부끄러워하면 불이 식습니다.
복음의 불을 타오르게 하면 고난이 땔감과 같아서 타오르게 합니다.
고난을 싫어하고 멀리하면 불이 식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이야기입니다.
고난이 없는 복음은 거짓 복음입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이 고난을 부끄러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따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고난을 따르는 사람에게 따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고난을 받아야 하고,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따라옵니다.
선순환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고난은 사람을 섬기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괴로움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섬기시며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괴로울 수밖에 업습니다.
자식도 사랑하다가 원수같이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섬기시면서 사랑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아픔을 감당하십니다.
복음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고난은 복음의 필수 과목입니다.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할 때 예수님을 배우고 능력을 경험합니다.
고난은 전공 필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교양 선택이 아닙니다. 이수 못하면 졸업을 못합니다.
사람을 섬기기 위해 아픔을 당하는 고난이 그리스도의 능력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디모데가 교회 책임자로서 잘 못하는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위축되고 비난을 받기도 하고 자책에 빠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뭘 잘해서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대로 구원받고 목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의지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복음의 직분은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는 나의 부족함을 덮을 넉넉한 것입니다.
잘 해서 하는 것이라면 못할 때 어떻게 말씀을 전합니까?
부족하고 죄인이지만 은혜를 의지해서 말씀도 전하는 것입니다.
장차 복음의 영광 생명을 얻게 될 것도 은혜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선포자, 사도, 교사로 세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포자는 전달자, 사도는 증인이고, 교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세 가지의 정체성은 복음 전달의 다양한 경로와 방식이 떠오르게 합니다.
선포는 일방적인 전달, 가르침은 관계와 소통 속에서 전하는 것입니다.
선포할 때 안 듣는 사람도 있고, 안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원과 승리의 소식을 선포를 못 들으면 어둠 속에서 살게 됩니다. '
전쟁이 끝났다는 선포를 못 들으면 평생을 숨어 사는 사람도 있듯이 말입니다.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가 선포되었는데 그것을 안 들으면 갇혀살 수밖에 없습니다.
듣는 자는 생명을 얻기 때문에 전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성경 선생은 불신과 교만과 무지와 무례를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주는데 배반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사람을 섬기는 교사의 삶은 지치고 곤하기도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복음의 선포자로 교사로 세우셨기 때문에 이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언제까지 해야하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망할 때까지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남는 자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안 믿고 떠나는 것 같지만 듣는 자, 남은 자,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바울은 고난을 받을 때 내가 믿는 자 예수님을 내가 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을 때 몰라라 하지 않으십니다.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고 나와 함께 고난을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했습니다.
생명, 장래,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회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실 때 우리의 것을 맡아주십니다.
복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짐을 맡아주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에게 무엇을 맡겼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기당하고 본전도 못 건지고 휴지 조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긴 것은 가장 완전합니다.
너게 나에게 맡긴 것은 모든 것을 다 지켰다 하십니다.
나의 생명, 미래, 자녀, 가정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복음을 위해 살 때 보호해주십니다.
바울은 망하면 어떻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지켜주신다고 믿고 복음을 디모데에게 토스했습니다.
디모데에게 바른말,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흉한 말, 어그러진 말이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비뚤어집니다.
복음은 바른 말, 아름다운 말입니다.
성경 공부하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디모데도 바울을 이어 복음을 지키다가 순교합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부인하지 않고 지켰기 때문에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생명처럼 사랑하며 순종으로 지켜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 의무와 책임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복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같이 남은 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바울을 섬기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찾아와 대화 나누고 위로하고 섬기고 필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복음의 일군을 위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로하는 사람입니다.
새해에도 말씀을 사랑하며 전달하는 영광스러운 일군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당하시고 괴로움을 겪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고난에 동참하면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얻습니다.
사랑, 절제, 능력을 얻게 됩니다.
고난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세상 속에서 고난을 감당하며 복음을 전하는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과 더 깊은 사랑의 관계로 들어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의 고난을 받음으로 복음과 함께 영광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복음의 선포자, 사도, 교사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성경이 나에게 읽어주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6장 열둘을 택하신 하나님 (0) | 2022.01.16 |
---|---|
출애굽기 17장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0) | 2022.01.09 |
민수기 11장 민수기 12장 탐욕스러운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0) | 2021.12.26 |
이사야 9장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0) | 2021.12.05 |
민수기 9장 10장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0) | 2021.1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