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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나에게 읽어주다

민수기 11장 민수기 12장 탐욕스러운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by 로카리스 LORD Charis 202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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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을 향한 출발이 시작부터 삐걱거립니다. 

지도자를 향한 비난과 원망 불평이 시작됩니다. 

처음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은 이런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줍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모세와 이스라엘, 하나님과 모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갈등과 문제 속에서 성장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광야는 사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합니다. 

고난으로 인해서 원망한 것입니다. 

3일 걸어보니 너무 힘들다 원망한 것 같습니다. 

물이 없다, 양식이 없다, 길이 험하다 원망했습니다. 

원망을 들으며 기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화가 나셔서 불을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셨습니다.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불맛을 보고 놀라서 모세에게 봐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니 불이 꺼졌습니다. 

 

그러나 원망은 계속됩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백성이 탐욕을 품자 그것이 이스라엘에게도 전염되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에 맛있는 다양한 것을 먹었는데 광야에서는 만나 외에 아무것도 없어서 기력이 쇠한다고 한탄했습니다. 

한 가지 음식만 먹고 살기 쉽지 않습니다. 

맛있는 것을 다양하게 먹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인데 이것이 탐욕입니까?

아침에도 만나, 저녁에도 만나, 그 다음날에도 만나를 먹으니 지겹기도 할 것입니다. 

생선도 먹고 싶고,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고 싶고, 부추와 파와 마늘도 먹고 싶을 것입니다. 

 

만나는 깟씨같고(향료) 진주와 같고 두루 다니며 맷돌에 갈고 다양하게 먹었는데 

기름 섞은 과자 같았따고 하였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소중한 양식입니다.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특별한 양식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고기를 달라고 울었습니다. 

애굽에서 값없이 먹던 것들을 달라 하였습니다. 

사실은 노예로 살던 댓가로 먹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날마다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값없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어린양의 헌신으로 모세의 수고와 헌신으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노예 시절에는 마음과 영혼이 고통스러워 죽고 싶었고, 지금 자유인으로 살면서 고난이 있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광야의 고난은 자유인으로 살면서 받는 고난입니다. 

가나안 땅에 이르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소산을 먹을 것입니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맛이 나는 만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만나를 주신 은혜를 감사한다면 광야에서 얼마든지 감사하고 즐겁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 기간에 감사하며 통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만나 밖에 없다 하였습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에 감사하지 않고 고난만 생각하면 견딜 수 없습니다. 

노예 시절이 좋았다며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즐기는 쾌락에 이끌려 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만나에 감사하지 않고 탐욕에 이끌려 원망하고 우는 소리가 하나님과 모세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십니까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젖먹는 아이를 품고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가라고 하시는 건가요 따졌습니다. 

백성을 먹일 고기가 없는데 고기를 달라고 하니 모세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기를 달라고 하거나 다른 사람을 같이 해달라고 하지 않고 죽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감당하는 짐이 고통스럽고 무거워서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우울증입니다. 

모세도 사람입니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죽고 싶습니다. 

이런 괴로움을 호소할 대상이 있으니 다행이지 뭡니까!

하나님은 모세의 죽고 싶다는 막말에도 하나님은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고 싶다고 하지 않으시니 다행이지 뭡니까!

하나님께서 나도 그만하고 싶다고 하신다면 우리 인간은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강하셔서 인간의 약함을 감당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백성 중 노인 중에서 70명을 뽑아서 모세의 짐을 함께 감당하게 하십니다. 

모세의 힘든 마음을 공감하십니다. 

무거운 짐을 나눠서 질 동역자를 세워주십니다. 

모세는 대책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무거운 짐을 혼자 담당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듭니까?

하나님은 사명인의 짐을 함께 담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기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백성들이 노예로 살던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기가 지겨울 정도로 한 달 동안 고기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애굽에서 어찌 나왔던가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배터지게 먹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셔서 자녀의 멸시를 받으시니 고통스러우셨습니다. 

멸시와 고통을 견디며 아버지 노릇을 하시면서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하십니다. 

하나님도 감정 표현을 하십니다. 

 

모세는 어떻게 한 달 동안 고기를 주겠다고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양 떼 소떼로도 부족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물으십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손, 홍해를 가르고 길을 내고 이스라엘을 건지신 그 손입니다. 

한 달 동안 육십만 명의 고기를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을 모세와 70명의 장로들에게 주셔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닷과 메닷은 자기 집에서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말려달라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의 권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모세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셔서 다 선지자가 되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자신만 지도자로 세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면 지도자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통해서만 모임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는 공동체를 불안하게 합니다. 

모든 백성이 말씀의 종이 된다면 얼마나 모임이 은혜롭겠습니까?

나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나를 통해서 모임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진다고 생각해야 그 모임은 건강한 모임이 됩니다. 

지도자의 생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통해 메추라기를 모아들이게 하셔서 고기를 먹이게 하셨습니다. 

고기가 잇사이에 씹히기도 전에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탐욕을 버리고 적당히 고기를 모아야 하는데 지나친 욕심으로 재앙이 임하여 고기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없이 끝없이 배 터지게 절제가 없습니다. 

풍요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탐욕의 덫이 되어갑니다. 

절망이 더 많습니다. 

욕망을 채우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행복입니다. 

탐욕을 다스리면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탐욕을 따르면 무덤으로 갑니다.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육신이 욕망을 지배하고 감정과 탐욕의 종이 되어 결국은 죽음을 향해 갑니다. 

탐욕은 무덤입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의 교훈입니다. 

말씀을 간직하고 전하고 다스림을 받아야 욕심을 절제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12장에서는 모세는 구스의 여자를 취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냐며 미리암은 말합니다. 

이 말에 하나님이 정리하십니다. 

모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특별하다고 하십니다. 

모세와는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씀한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미리암에게 나병을 주었습니다. 

모세는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광야 시절은 이스라엘의 바닥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원망, 불평, 탐심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고통이 드라납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보이는 기간입니다. 

또 모세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기간입니다. 

혼자 백성을 감당하다가 고통스러웠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고난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광야를 통과하며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민수기 광야 기간의 기록이 필요합니까?

광야가 아니면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날 기회가 없고, 하나님의 고난이 드러날 기간이 없습니다. 

광야가 아니면 하나님의 종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광야 시절이 사람을 더욱 크게 합니다. 

다윗도 광야 시절 아름다운 시편을 썼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성장했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고난을 기록한 책입니다. 

사십 년간 하나님의 화를 참은 시간들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불신과 원망과 탐욕을 담당하십니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은 괴롭다고 그만하겠다고 하신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구원의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감당해 주십니다. 

독생자를 주신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사람을 섬기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고난을 배우는 우리를 키워가시는 것이 광야 연단의 희망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며 내 속의 모든 것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알아갈 때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광야는 실패의 장소, 정죄의 장소가 아니라 성장하는 장소입니다. 

소망의 지도자로 키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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