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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나에게 읽어주다

민수기 9장 10장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by 로카리스 LORD Charis 202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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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가나안 땅을 향해 내딛는 행진의 시작입니다. 

10장에 이르기까지 오랜 행진 준비가 있었습니다. 

11장에 보면 출발 3일 만에 원망과 탐욕이 퍼집니다. 

시작하자마자 실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랜 준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민수기 마지막 장은 가나안 땅을 앞둔 소망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하나님이 은혜의 언약으로 덮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건데 준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준비를 했기에 광야길에서 인도하시는 하니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일 년 된 그때에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을 정한 기일에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달 14일입니다. 

일 년 전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어린 양과 쓴 나물과 무교병을 먹은 첫 유월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애굽을 나왔습니다. 

이제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작년과 동일한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어린양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기념 절기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마음이 어땠을까요?

애굽에서 나올 때는 급하게 나오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급하게 어린양을 먹고 나왔습니다. 

일 년이 지난 후 지금 유월절을 지킬 때 그날의 긴장과 두려움과 구원의 은혜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출발에 앞서 유월절을 지키게 하시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는 정체성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죽음과 희생으로 이 길을 걷게 되었음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믿음의 길은 착하고 성실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은혜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구원의 은혜입니다. 

나 대신 죽으신 어린 양의 희생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새 출발을 하려면 다시 구원의 은혜를 새롭게 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나 음악 연주자가 슬럼프에 빠지면 다시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지치고 쓰러질 때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고 찬양할 때 믿음이 회복되고 믿음의 행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된 사람들이 왜 우리는 유월절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릴 수 없는지 물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 다음 유월절에 하자, 헌물을 안 드려도 되는구나 좋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하며 유월절에 동참하려는 헌신과 예배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헌신하라고 하냐고 힘들어하는 사람은 있는데, 왜 헌신하지 말라고 하냐며 힘들어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마케도니아 성도들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신에 동참하고 싶다고 했던 아름다운 성도들이 있습니다. 

헌신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는 것은 불행합니다. 

헌신하지 않으면 은혜에 참여할 수 없고 언약에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헌신과 예배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은 언약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듣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헌신과 열망을 기뻐하시고 둘째 달 14일에 보강 유월절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유월절을 건너뛰면 안 될까요?

하나님의 배것의 정체성이 구원받은 은혜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약화되고 언약에서 끊어질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안다면 유월절을 가볍게 함부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의 절기, 유월절과 감사절 등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헌물을 드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풍성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를 부담으로 여기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언약에서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수양회는 구원의 은혜를 새롭게 하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직장 휴가나 군휴가를 얻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참석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수양회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유월절과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감사 절기를 지킬 때 시를 지어 노래하라 하였기에 시를 지어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시를 짓는 것은 고난입니다. 감정 표현을 적절한 단어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 은혜와 기쁨이 넘치고 또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가운데 교회 공동체가 기쁨의 축제를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고난의 헌신에 참여하는 것이 언약 백성들의 의무요 동시에 특권과 축복입니다. 

신앙의 절기를 지키는 것은 축복으로 여기고 동참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복 받은 사람입니다. 

더 풍성한 생명을 주셔서 광야의 고난길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십니다. 

 

성막을 세운 날 구름이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에는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 아침까지 있었습니다. 

항상 그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구름과 불 모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데 한순간도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뜻입니다. 

낮과 밤 잠시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한순간도 더나지 않고 함께하셨습니다. 

수없는 배반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하는 것은 고통입니다. 

양이 목자를 배반하고 떠나는데 목자가 양을 버릴 수 없어 고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주어도 부모는 자녀를 버릴 수 없어서 그 괴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 많은 고통을 겪는다는 뜻입니다. 

출애굽 이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충분히 화나게 하는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얼마나 신실하지 못하고, 교만하고 악한지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고 시내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민수기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의 이러한 원망 불평 반역의 실력을 보여줄 것입니다. 

출애굽 전이 전반전, 광야는 후반전입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화가 났다 고통의 기간 괴로움의 기간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게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은혜이지만 하나님께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사람을 섬길수록 그 사람의 고집과 교만과 완악함을 보게 되고 그것을 겪으면 고통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시고 괴로울 것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구름이 떠오르고 머무는 것은 행진과 머무름을 알리는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따라서 행진하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합니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오래 머무릅니다. 

이스라엘도 따라서 잛게 또는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빨리 가고 싶은데 한달 두 달 심지어 일 년을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은 답답하겠죠.

쉬고 싶은데 쉬지 못하고 가야할 때는 얼마나 원망스럽습니까?

이스라엘의 가고 서는 것이 오직 여호와의 명령대로 됩니다. 

본문에 여호와의 명령대로라는 말이 8번 나옵니다. 

오직 구름을 통해 명령하셨습니다. 

이 길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있습니다. 

가고 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지도와 정보를 주고 언제까지 어디로 도착해라 하면 어떻게 될까요?

광야에는 길이 없고 스스로 찾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계획이 완전해 보여도 식량이나 물이 떨어지면 다 죽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 속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미래를 맡겨야 이스라엘이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얼마나 만은 실패를 하였습니까?

그들의 뜻대로 했다면 열 번 천 번 만 번 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계획이 있었기에 그들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빨리 가고 싶을 때가 있고 느리게 가고 싶을 때가 있는데 믿음의 길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자기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존심과 고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 주관하시고 좋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가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십 년 이십 년 그 이상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신앙의 성취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 동행하는 삶입니다. 

 

구름이 일 년까지 머무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40년 광야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내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명령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수없이 죄짓고 죽어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계속되었고 이스라엘은 순종합니다. 

실패로 보이지만, 실패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인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너무 말을 안 들으면 사람은 포기하고 실망합니다. 

사람은 실제로 포기를 많이 합니다. 죽든 살든 너의 맘대로 해라 합니다. 

원하는 길을 가라, 간섭을 안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범죄와 반역에도 끝까지 책임지고 인도하시고 아버지 되심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속이 썩고 괴로워도 목자 하다가 죽고 싶고 부모 하가다 버리고 싶기도 한데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인도하십니다. 

사사기의 처참한 모습에도 화가 나도 인도를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양 됨을 포기하지 말고 남아야 합니다. 남아야 희망이 있습니다. 

 

내가 가는 인생길이 원하는 길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의 인생이 이렇게 이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내가 계획했던 일이 아닌데 하는 삶이 삶의 길입니다. 

오늘까지 믿음을 떠나지 않고 말씀을 붙드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산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는 한 우리를 덮어주시고 완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직분의 삶을 끝까지 살기를 기도합니다. 

 

 

10장은 은나팔에 관한 말씀입니다. 

소집과 행진, 전쟁과 기쁨의 축제의 절기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움직이려면 나팔 소리가 필요합니다. 

나팔 소리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팔을 불라 하실 때 이스라엘은 응답해야 합니다. 

서로 긴장하고 격려하고 함께 움직이는 좋은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전쟁의 나팔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요, 기쁨의 절기의 나팔은 찬송을 의미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고난의 날 함께 기도하고 기쁨의 날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축복하십니다.

성탄절은 은혜의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으니 말입니다. 

성탄 축하의 나팔 소리를 즐거운 축제에 함께 소집하고 행진하고 기뻐하고 고난 받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구름이 증거 장막에 떠오릅니다. 

3일을 행진하여 바란 광야에 머무릅니다. 

언약궤가 가장 앞서가고, 유다 진영, 게르손과 므라리 지파, 르우벤 진영, 고핫 자손, 에브라임 진영, 단 진영의 순서로 행진합니다. 

모세는 호밥에게 동행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호밥은 고생길에 동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를 끝까지 붙잡습니다. 

호밥은 광야의 전문가였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서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자 호밥을 붙잡은 것입니다. 

우리와 동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호밥을 붙잡았습니다. 

고생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면 복을 받는다는 확신으로 호밥을 붙잡았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을 갈 때 전문가인 사람을 붙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겸손하게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반드시 나와 함께하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언약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궤가 출발할 때 승리를 기원하고, 궤가 쉴 때는 평안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광야는 고난이 가득합니다. 시험과 유혹도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예견, 또는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우나 고우나 언약 백성을 견디고자 하십니다. 

미워도 내 새끼입니다. 

그들을 위해 싸우시고 승리를 주시고 함께하시고 평안을 주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향한 영원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면 하나님이 우리를 복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점입니다. 

아들을 주신 마당에 무엇을 못 주시겠습니까?

아들은 하나님의 약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한 아무리 연약하고 죄에 넘어져 실패를 많이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복 주실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우리의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의 길을 걷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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