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시내 광야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행군할 때가 임박했습니다.
1년 13개월 머무른 후입니다.
7장은 성막을 완성한 때의 이야기를 소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휘관들의 헌신과 레위인들의 헌신 속에서 말씀하시고 성소의 등불을 밝히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대화하고 싶어 하기 원하시는 아름다운 헌신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7장은 성막 완성의 과거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성막에 기름을 발랐다는 이야기도 출애굽기에는 없는데 민수기에서 나옵니다.
기름을 발랐다는 것은 성막과 기구들이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의미입니다.
성막과 기구들은 기름을 바름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온전히 바쳐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막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장소이고, 하나님이 함께 거하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그날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하나님께 헌물을 드렸습니다.
지도자 두 명당 한 개씩 수레가 헌신되었고, 소는 각 한 사람당 드려졌습니다.
성소 봉사에 드려져 쓰임 받습니다.
게르손 자손에게는 수레 두 개와 소 네 마리가 주어지고, 므라리 자손에게는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었습니다.
고핫 자손은 수레와 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어깨로 메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각 자손에게 합당한 고난과 책임과 영광이 있습니다.
말씀 준비의 짐도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합니다.
십자가는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다음은 성전 봉헌 예물을 지휘관들이 드리고 있습니다.
열두 지파의 제물은 모두 동일합니다.
지휘관이 되어 책임을 지는 것은 명예롭지만 넘치는 헌신을 앞장서서 해야 함을 뜻합니다.
억지와 체면과 의무감으로 하는 헌신은 기쁨이 없습니다.
이런 헌신을 할 바에는 지도자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대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된 헌신을 하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헌신이 기쁨이 아니라 억지와 거짓이 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지휘관들의 헌물은 모두 동일하지만, 낱낱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길게 반복해서 기록했을까요?
한 사람 한 사람 헌신을 인격적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하나님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헌신을 아름답고 귀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헌신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거나 비교되지도 않습니다.
왜 헌신을 귀하게 여기실까요?
하나님이 가장 헌신적인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의 헌신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헌신의 응답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반역으로 언약도 깨지고 성막도 깨질 수밖에 없었으나 모세를 중보자로 세워서 성막을 완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독생자를 제물로 주셨습니다.
희생을 향한 금그릇처럼 선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사람이 헌신을 해도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헌신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의 헌신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하나님이 헌신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헌신에 동참하여 하나님과 소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헌신의 사람은 헌신하는 사람과 마음이 통합니다.
양들을 섬기며 고난당하는 목자는 인종과 나이 성별이 달라도 서로 소통이 됩니다.
하나님은 헌신적인 분이기 때문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고 소통하십니다.
헌신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헌물을 나열한 후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증거궤는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장소입니다.
증거궤와 속죄소는 하나님의 헌신과 희생이 담긴 곳입니다.
인간의 죄로 언약이 깨어졌을 때 속죄의 은혜를 주셨고 언약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곳에서 말씀하십니다.
헌신이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다가 대화가 끝날 줄 모릅니다.
하나님도 헌신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대화를 나누고 싶으실까요?
예수님의 헌신과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여 주십니다.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화도 안 되고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다.
기쁨의 헌신은 하늘의 자유와 행복입니다.
헌신이 부담스럽다면 헌신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종들은 매우 부담스럽고 지치고 피곤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동하여 주님께 보답하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사랑하고 헌신할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성화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8장에서는 등잔의 등불을 앞으로 비추라고 하십니다.
등잔대 제작법도 다시 나옵니다.
성소의 등불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어둠을 밝히는 빛이 있음을 상징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세상에 빛을 비추어 앞을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은 성소의 등불처럼 희망의 빛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헌신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빛과 같고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을 보시고 예수님은 저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8장 5절부터 레위인 임직식이 나옵니다.
레위인을 위한 헌물과 안수가 있고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요제로 드립니다.
레위인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 되어 성막 봉사를 시작합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초태생 대신 인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드려집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나아갈 때 재앙이 없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살려고 성소를 주셨는데 가까이 나아가면 죄 때문에 죽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레위인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저주를 짊어지게 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내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화려한 성공이나 영광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눈에 안 띕니다.
제사장은 화려하나 레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재앙을 막아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레위인들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재앙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레위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들, 자녀들이 예배하지 않아서 낙심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돕는 내가 목자의 길을 가기에 그들이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을 잃고 낙심하여 쓰러지면 바로 양들과 자녀들에게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는 희망의 등불입니다.
헌신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지 말로 내가 믿음을 지키고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레위인은 현직에서 50세가 되면 은퇴합니다.
성막 봉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회막에서 돕는 어시스턴트 역할을 합니다.
책임만 내려놓을 뿐 성막 봉사를 떠나지는 않습니다.
지혜와 연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현직에서 은퇴하고 후배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개척 센터에 가서 돕는 역할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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