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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나에게 읽어주다

민수기 16장 17장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by 로카리스 LORD Charis 2022.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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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는 광야 40년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이 엎드러지고 형벌을 받는 기간이자 은혜의 기간입니다. 

원망과 반역의 죄로 죽게 될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때마다 살리셨습니다. 

두 번이나 죽을 뻔했는데 모세와 아론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이는 모세와 아론을 중보자로 세우셔서 스스로를 말리신 것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중보자를 통해 생명의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 등의 일당이 모세와 아론을 거슬렀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반역사건을 저지릅니다. 

여호와의 총회 위에서 스스로를 높이냐고 공격했습니다. 

회중이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분수를 넘어 사람들 위에 스스로를 높인 것이 아닙니다. 

사실 모세는 지도자를 하고 싶지 않아 했었습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짐이 무겁다고 죽고 싶다고 하였고 조기 은퇴 사표도 썼었습니다. 

권력형 독재자가 분수를 모르고 자기를 높입니다. 

만약 스스로 높이는 권력자라면 분노하고 권력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말을 듣고 엎드렸습니다.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낮추었습니다. 

권위가 무시되면 싸우기 쉬운데 모세는 하나님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러나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친다고 하였습니다. 

고라의 비난은 근거가 없고, 모세의 비난은 근거가 있습니다. 

고라는 레위 지파로서 성막에서 촛대 진설병 언약궤 등을 섬기는 봉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직분을 작게 여기고 제사장 직분을 구한다고 모세는 말합니다. 

지도자를 비방하는 말속에서 성막을 섬기는 자신들의 직분에 감사나 만족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과 고라는 같은 지파이고 사촌입니다. 

아론은 제사장이 되어 성소에서 분향을 하고 고라는 성소 기구들을 어깨에 메고 다릅니다. 

제사장의 시종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고라 자손이 낮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장이 더 높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직분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하고 소중합니다. 

감사함으로 감당하면서 은혜를 누리는 통로가 됩니다. 

고라는 사람과 비교하고 맡은 일이 초라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제사장은 향도 피우는데 자신은 짐만 나르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도 모세와 아론이 허접한 직분을 준 것처럼 말합니다. 

모세는 권력 욕망을 가진 자라고 비난합니다.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낮아져서 섬기는 자리입니다. 

의복이 화려하지만 그 의복에 제물의 피가 뿌려집니다. 

 

 

다단과 아비람이 거역했습니다. 

광야에서 죽게 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스스로 왕이 되려느냐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지 않고 밭과 포도원도 주지 않고 우리의 눈을 빼려느냐고 말합니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모세는 최악의 지도자입니다. 

이들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런 지도자는 아닙니다. 

자유가 없어 고통스러워 부르짖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헤매는 것은 모세 때문에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분노를 쏟지 않고 하나님께 쏟습니다. 

그들의 비난에 모세는 당당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믿었습니다. 

또 그는 목자 생활하면서 남의 것이라도 조금이라도 이용하거나 자기 유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고 도리어 많이 섬겼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죽을지언정 그들을 살려달라고 중보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악의적인 사람들의 비장에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250명이 향로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섰습니다. 

향로는 제사장만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들은 자신들도 제사장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향로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튿날 모세와 아론을 공개적으로 대적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이 고라의 반역에 마음이 쏠리고 동조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는 사실에 모세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고 하시며 회중을 순식간에 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때에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을 막았습니다. 

왜 한 사람이 범죄하였는데 온 회중을 멸하시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말림을 뿌리치지 않고 붙잡혀 주셨습니다. 

회중을 멸하겠다는 계획을 돌이켜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일반적인 죽음이라면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신 것이 아니지만,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면 이 사람들이 여호와를 멸시하는 것임을 알리라 하였습니다. 

모세의 말대로 땅이 갈라지고 다단과 아비람과 고라에 속한 사람들이 산 채로 땅 속에 빠지고 땅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땅이 250명을 불살랐습니다. 

지진과 불로 심판하신 이 사건은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자기를 높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영적 지도자가 맞다는 하나님의 최종 판결입니다. 

레위인의 직분에 감사하지 않은 고라와 추종자들이 분수에 지나친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무섭고 엄한 심판입니다. 

옳고 그름을 세우시고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모세와 아론은 대적자들이 심판을 받을 때 어떠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통쾌하고 속이 시원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돌이켜 살기 원하십니다. 

그들도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때 중보기도했습니다. 

반역의 죄에 불살라질 때 하나님도 마음이 아프고 모세도 괴로왔을 것입니다. 

적당히 경고만 주고 안 죽이면 안 되시는가...

반역의 죄가 전염병처럼 퍼져서 모두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남은 백성들이 죽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의 향로를 쳐서 제단의 기념물이 되게 하신 것도 아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분향하지 않게 하여 질서를 세우시고 고라와 같이 죽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심판은 무섭지만 하나님은 고통스러워하셨고 심판의 목적은 질서를 세워서 백성들이 죽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어제 본 것을 다 잊고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다 원망합니다. 

심지어 폭행까지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폭행을 당하여 회막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또다시 회중을 다시 순식간에 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들이 망하게 두는 것이 낫지 않는가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속죄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의 무지와 약함을 불쌍히 여기고 공격하기 치던 원수 같은 백성들이 죽지 않게 해달라고 속죄하고자 합니다. 

아론이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 달려가니 백성 중에 전염병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전염병으로 죽이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때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향로를 가지고 섰을 때 죽음과 전염병이 멈췄습니다. 

보통 속죄양을 통해 속죄해야 하는데 급했습니다. 

향을 들고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 섰습니다. 

아론이 희생제물 대신 향로를 가지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죽음의 자리에 버텨 섰습니다. 

아론이 목숨을 걸고 대신 죽고자 한 것입니다. 

이 아론의 중보를 통해 죽음의 재앙을 멈춰서게 하셨습니다. 

다 죽이겠다고 하신 그들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그들이 살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중에 중보자를 세워서 하나님 스스로를 막은 것입니다. 

희생제물과 중보자가 있어야 하는데 아론과 모세를 세우심으로 하나님 스스로를 막으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죽이겠다고 하고 한편으로는 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중적인 모습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악을 인해 죽이고자 하시지만 동시에 살리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죽여야 하는데 사랑 때문에 죽일 수 없어서 중보자를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론과 모세가 하나님을 말려야겠다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죄가 미워서 죽이셔야 하는데 죽일 수 없어서 자기 아들을 중보자로 세우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론은 중보자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의 고통스러운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을 주시고 속죄를 완성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고통이 흐르고 사랑이 흐릅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고통스러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슴 아프고 뜨거운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전염병으로 많이 죽었지만 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열두 지파의 지팡이를 두고 택하신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십니다.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열매가 열리게 하십니다. 

이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어서 반역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반역자들을 살게 하시는 듯이 있습니다. 

아론의 속죄는 이스라엘이 죽지 않고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두려움이 사람을 회개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론의 중보로 사람들이 살아나셨습니다. 

아론의 중보는 마른 막대기에 꽃이 피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열매가 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론은 사람들이 때릴 때 속수무책으로 맞습니다. 

그가 향을 피우고 속죄할 때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 속죄를 통해 그들이 살자 우리가 다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하며 죽을 죄인으로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완악했는데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을 보고도 심판 앞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엘리야를 찾아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조롱을 많이 받았으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불이라면 엘리사는 물입니다. 

엘리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일대일 성경공부는 사람들의 원망과 불평을 참으로 말씀을 전하는 부드러운 사역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자는 생명을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키는 중보자와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나아가서 중보기도했습니다. 

사람의 수를 줄여가며 중보기도했습니다.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롯의 가족을 데리고 나오십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기도로 살아났지만 말로는 비참합니다. 

부끄러운 삶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참 후에 모압의 자손 중에 그리스도의 조상인 룻이 나옵니다. 

롯의 후손이 룻입니다. 

아브라함이 중보기도로 섬긴 것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롯의 후예 중에 그리스도의 조상이 나왔다는 것, 

중보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열매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속죄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달라고 속죄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당장 회개하지 않고 열매가 없어 보였으나 예수님의 죽음이 생명을 살리는 열매를 냈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희생과 섬김과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권력 앞에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자의 섬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원망과 반역에서 돌이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중에 계속해서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으면 구원도 없고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모세와 아론의 중보 때문에 그들이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예수님의 중보 때문이고 나에게 말씀을 전해준 일대일 목자의 희생 때문입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유럽과 영국 호주로 젊음을 바쳐 20대에 목숨을 걸고 나갔습니다. 

그 당시에 조선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조선에 왔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던 조선 땅에 왔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님은 대동강을 건너다 죽고, 풍토병으로 죽고 어린아이들도 죽었습니다.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아서 조선이 하나님의  chosen people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여기에도 많은 선배들의 희생의 열매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으로 생명을 얻었으니 우리도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생명이 움돋고 싹이 나고 생명이 열매 맺습니다. 

복음의 고난에 동참할 때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 인생에 열매가 맺힘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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