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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나에게 읽어주다

요한복음 19장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믿는 믿음이 진정한 의

by 로카리스 LORD Charis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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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 이야기입니다. 

죽음은 슬프고 힘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의 고통이 잘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부분은 생략되고 다 이루었다 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의 영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께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라고 하면서 손으로 때리고 희롱했습니다. 

빌라도의 유월절 특사로 풀어주고자 했다가 무산되자

예수님을 때리고 모욕과 수치를 당한 창백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게 했습니다. 

이렇게 때리고 심문했는데도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강조합니다. 

아무 죄 없이 고난 받는 이 사람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보라, 이 사람을"이라는 명화도 있습니다. 

죄 없이 상처로 가득한 예수님을 보면 죄 많은 세상에서 상처 받고 고통하는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빌라도는 이 재판에서 빠지고 싶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법으로 사형이지만 로마법으로는 반역죄로 해서 사형시키고자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서 너는 어디로서냐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내가 너를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는데 하면서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않았다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빌라도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눈치를 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빌라도를 정죄하셨습니다. 

나를 넘겨준 자의 더 크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한 죄는 반드시 정죄와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왕처럼 당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빌라도를 협박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는 왕이 없다고 하면서 가이사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죽음의 낮은 자리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형틀을 어깨에 지고 가고자 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셨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이고 두렵고 무섭고 끔찍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에게도 그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 하십니다. 

생활의 십자가도 무겁습니다. 

살기 위한 십자가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고난을 배우며 따르는 사명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양들을 섬기고 자녀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고 동역하는 십자가입니다. 

사람의 죄성을 알게 되면 사람을 섬기는 십자가가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섬기다가 탈진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앞서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우리에게 따르라고 하십니다. 

나와 함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사명의 십자가는 나 혼자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앞서 지시고 우리는 뒤따르며 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무게를 예수님이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 손만 얹는 형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99%를 지시고 우리에게도 멍에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승리와 영광의 길입니다. 

 

복음서에는 십자가의 고통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육체의 고통에 대해셔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혀 흉악한 범죄자 사이에서 하나로 여김 받는 수치가 따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힌 두 범죄자 사이에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에 완전하게 드러나셨습니다. 

피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는 수치의 한가운데 계셨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수치와 멸시를 한 몸에 다 받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3개 국어로 써붙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 아닌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나라의 왕이십니다. 

진정한 왕 예수님은 백성을 대신하여 수치를 감당하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권력 욕망입니다. 

죄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형벌을 받습니다. 

 

출애굽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며 음란 파티를 벌였습니다. 

적어도 두 번 진멸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보자 모세를 통해 속죄제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언약을 회복하셨습니다. 

중보자와 속죄제사가 없었다면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 하였습니다.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겸손히 죽음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죽음과 낮아짐이 우리를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교만과 반역의 죄에서 구원을 받고 나음을 받을 길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나의 왕이 되셔서 나를 사랑과 겸손으로 섬기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나의 사랑과 섬김을 받을 진정한 왕이십니다. 

 

왕이 자기 백성을 고통을 감당할 때 인간은 속옷을 제비뽑기 하면서 탐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겉옷과 속옷을 남김없이 다 털어주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칼로 찌르는 것처럼 괴로와했습니다. 

예수님은 곁에 있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요한을 아들이라고 부르셨고, 요한에게는 내 어머니라 하셨습니다. 

고통이 심하면 부모를 돌아보기 어려운데 어머니를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아들로서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왕으로서 성도를 귀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신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아프고 상한 마음으로 우는 자녀를 돌보시는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사랑의 능력이 흐릅니다. 

 

예수님이 모든 일이 이룬 줄 아시고 내가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메사야의 목마름은 죄인들의 목마름을 십자가에서 당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성령의 생수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완수선언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결승선을 완료한 것입니다. 

원어로는 지불이 완료되었다 계산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사명을 완수 완료 종료한 것입니다.

인류의 속죄 사역을 완성한 것입니다. 

더이상 속죄 제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많은 속죄 제물이 피 흘리고 죽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이요 상징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그 속죄를 다 완성하셨씁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속죄의 효력을 믿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이 떠나고 영생을 누리고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도 이미 청산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되나요?

은혜 받은 사람이 죄를 지면 괴롭습니다. 

죄와 싸워도 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달려가 예수님의 속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의를 쌓는 것이나 불의를 슬퍼하는 것도 신앙이 아니고 예수님의 의를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만약 나의 의를 자랑한다면 예수님의 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 의지, 내 도덕, 내 의로 완전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희생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희생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쌓고 자랑해야 합니다. 

목자 생활하면서 의를 쌓기고바 날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피를 뒤집어써야 합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성화가 아닙니다. 

헌신과 희생이 사람을 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이 성화시킵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사랑하고 나의 의로 삼을 때 성화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확인되어 뼈를 꺽지 않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성취입니다. 

탄생부터 죽음과 부활까지 성경의 성취이십니다.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죽고 말씀대로 부활, 말씀대로 다시 오시고, 말씀대로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승리하셨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 욕심을 이루고 싸워서 빼앗고 성공과 성취를 이루고자 합니다. 

못 이루면 괴롭지만 이루어도 허무합니다. 

경쟁자를 이기면 행복할까요?

벤허의 주인공은 원수가 죽었는데도 더 고통스럽고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갈 때 내가 얻은 성공이나 사람이 나를 붙잡아주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이 진정한 구원자이십니다.

말씀을 주시고 말씀으로 죽으시고 말씀으로 사신 얘수님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승리와 영광입니다. 

 

서로 싸우고 욕심으로 경쟁하는 생존게임은 단 한 사람만 살아남지만

낮아져 섬길 때 많은 사람이 살고 생명을 얻습니다. 

헌신과 희생과 용서와 섬김이 영광입니다. 

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을 따를 대 행복과 자유가 있습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댈도 살고 말씀대로 죽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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