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길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내가 가는 곳에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희망이 무너지고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다고 하니까 믿음이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가시는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거할 거처를 예배하시고 제자들을 예수님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 거처는 아버지 집입니다.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십니다.
아버지 집은 풍요롭게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곳입니다.
처소 문제는 집 문제만이 아니라 존재 이유이고 해야 할 사명이 있는 곳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예수님을 따라 위대한 일을 하고 싶은 위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할 일도 없어지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가시는 죽음과 부활의 길은 진정한 자유, 생명,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도마는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겠는데 그 길을 어떻게 가냐고 모르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그 길이 아버지께로 인도하십니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면 시간과 삶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아버지께로 이르는 새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배타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남녀 성별 나이 인종 차별 없이 예수님을 믿으면 아버지께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포용적인 말씀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나를 인도하는지 모르고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할 때 예수님을 더욱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하나님께 이르는 진리가 있고 고난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길이라고 할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십니다.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그의 일을 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이르는 길이 되신다는 것은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고 이 땅에서 아버지 집을 누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더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슨 큰 일을 할까 하지 않으시고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렇게 살라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큰 일은 큰 사랑, 큰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 일을 하고자 하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 일, 큰 사랑, 큰 희생을 하려고 하면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보혜사는 대언자, 변호사, 도와주는 자의 의미가 있습니다.
16장에서 보혜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예고편입니다.
보혜사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 안에 영원토록 계십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대속의 죽음으로 사명을 완수하고, 바통을 보혜사에게 넘겨주십니다.
진리의 영 보혜사가 제자들과 그들 안에 함께하십니다.
보혜사가 아버지와 제자들을 하나로 연합되게 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신 말씀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진리의 성령은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은 사랑 충만, 고난 충만, 말씀 충만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문제 해결이 본질이 아니며 예수님을 믿고 고난을 통과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 본질입니다.
27절에 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니 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평안은 조건에서 옵니다. 일이 잘 되고, 돈을 잘 벌고 뭐 그런 일들입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죄사함과 구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현실 문제와 장래 문제, 자녀 미래 등.
현실 문제를 온통 힘을 써도 불안한데 예수님을 믿고 평안을 얻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현실 문제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오십니다.
예수님은 가심으로 부활하여 찾아오시고 성령으로 찾아오시고 재림으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성령을 주시고 아버지 집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인생문제에 대한 답이 되십니다.
십자가를 찾아 영접하면 길을 찾고 길을 가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답 없는 인생,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생이 아니라 답 있는 인생, 답 주는 인생, 길을 찾는 인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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